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MS 엠덴 (문단 편집) === 인도양 통상파괴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Cruise_of_the_Emden_1914_Map.png]]|| ||엠덴의 항로|| 엠덴은 인도양 진입 직후 지나가던 중립국 그리스의 석탄운반선 폰토포로스(Pontoporos)을 발견한다. 폰토포로스는 중립국 선박이었지만 싣고 있던 석탄은 영국 해군용이었기에 엠덴은 폰토포로스가 적재하고 있던 영국군용 석탄을 신나게 털어먹고, 폰토포로스의 선장과 계약을 맺어 한동안 엠덴의 석탄보급선으로 활용했다. 직후 엠덴은 콜롬보-캘커타 항로를 급습하며 통상파괴전을 시작했다. 약 10일여만에 엠덴은 5척의 선박을 발견, 그중 4척을 격침시키고 1척을 나포했으며 나포선에 포로들을 옮겨싣고 항구로 보냈다. 그 직후인 9월 23일, 엠덴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는 군사작전을 단행했는데, 인도 동해안의 주요항구 중 하나인 마드라스(Madras)를 단독으로 급습한 것이다. 9월 23일의 마드라스 급습에서 엠덴은 아무런 피해 없이 항구에 신나게 포격을 퍼부었고, 정박해있던 증기선 1척을 격침시켰으며 항만의 유류 탱크에 포격을 퍼부어 날려버린 뒤 유유히 철수했다. 이 초유의 사건에 인도양 일대는 패닉에 휩싸였고 인도양 해운은 마비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전투함 1척이 항로상을 날뛰고 다녀도 무서운 판국에 아예 대놓고 항구를 습격할 지경이니 해운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 없었다. 이후 엠덴은 스리랑카를 지나 인도양 남부로 향하여 캘커타, 아덴, 호주를 잇는 항로를 습격한 다음 몰디브의 석탄저장소를 습격하여 석탄을 보급하고 10월 9일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개전한지 70여 일이 지나도록 디에고 가르시아에는 '''개전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서''' 디에고 가르시아 수비대는 엠덴을 마침 지나가다 들른 열강 함선으로 여기고 따뜻하게 환영해주었고 식수와 연료 등을 보급하고 정비까지 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적군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환대와 도움을 받은 엠덴은 다시 출항하여 차고스 제도와 콜롬보 사이에서 활동하며 최소 5척 이상의 상선을 격침시켰다. 그리고 엠덴의 활극 중 가장 유명한 페낭 습격전이 벌어졌다. 10월 28일, 영국령 말레이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페낭 항구를 엠덴이 홀로 습격한 것이다. 엠덴은 이번에도 야음을 틈타 가짜 네번째 굴뚝과 영국 해군기를 보이며[* 참고로 전투함이 타국, 타군의 깃발을 게양하는 것은 의외로 전시 국제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기만행위로 적국의 깃발을 게양할 수 있다는 것. 대신, 교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무조건 국기내지 자국 해군기를 게양해야 한다.] 손쉽게 항만 경비대의 눈을 속이고 페낭 항구에 진입, 어뢰를 발사하여 정박해있던 러시아군 장갑순양함 젬추그(Zhemchug)를 격침시켰다. [[쓰시마 해전]]에서 겨우 탈출에 성공한 젬추그는 결국 10년 뒤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젬추그 격침 후 탈출하던 엠덴은 프랑스 해군 구축함 모스퀘트(Mousquet)와 조우하여 함포로 격침시키고, 탄약을 싣고 있던 상선 한 척을 추가로 격침시켰다. 페낭 습격의 결과로 인도양 해운은 말 그대로 마비, 전면중단되었다. 해운당국은 인도양의 모든 상선활동을 중단시켰으며, 항로의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모든 비전투선의 출항을 금지시켰다. 특히 서부전선의 급박한 상황 속에 영국이 소환한 호주와 뉴질랜드 육군(안잭군)의 유럽 수송 일정도 크게 지연되었다. 그러나 엠덴의 운도 다해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